BWI 커피르포

「우리의 경복궁을 벗삼은 카페들」

올해의 경복궁은 왠지 더 쓸쓸한 느낌입니다.

을미년의 경복궁이기 때문이죠.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것인지 역사를 통해 증명한 경복궁이 자리한 지역 일대는 고즈넉한 골목길을 걸으며 쉬이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거리들입니다.

'커피'가 너무 좋아 커피를 배우고 10년 넘은 지금도 커피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경복궁은 경복궁의 오랜 역사만큼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카페들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左: 커피스트 초창기부터 사용했던 앤틱 빙삭기. 右: 커피스트에서 판매중인 원두들

최근에는 영국하면 떠오르는 커피로스터를 말하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바리스타들은 Squaremile Coffee를 꼽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물론 스퀘어마일 커피를 자주 주문해 마셔보는 사람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아직 커피스트의 조윤정 대표님이 영국에 계실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직 스퀘어마일 커피가 창업은 물론 창립자인 제임스 호프만이 WBC(World Barista Championship)라는 세계 바리스타 대회에서 우승하기 수 년전(제임스 호프만은 2007년 우승)인 시절입니다.

여전히 하루 하루의 커피 추출을 '일상의 모험'이라고 표현하는 조윤정 대표님은 2003년 영국의 Monmouth Coffee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커피스트를 오픈했습니다. 당시만해도 낯선 모습이었던 핸드 드립 커피를 국내에 선보인 몇 안되는 분이며, 경복궁 부근에서 조용하게 10년 이상을 커피스트를 이끌어 왔습니다.

|커피스트는 경복궁 부근의 고즈넉한 골목길의 여유를 조용히 즐길 수 있다.

초창기부터 사용해온 후지로얄 로스터기(일본 로스터기)가 커피스트의 커피를 담당하고 있으며,  고노 드립퍼를 이용하여 추출을 합니다. 지난 10년간 오는 손님 그리고 그 손님을 응대하는 조대표님의 모습에서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복궁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지 모르겠습니다.

메뉴판을 받자마자 아프리카의 화사함에 탄탄한 바디를 느낄 수 있는 케냐 AA를 주문합니다. 메뉴판에는 케냐 AA란 정보이외에 딱히 다른 자세한 정보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커피스트의 홈페이지에는 니에리 탐바야 지역의 탐바야 협동조합에서 잘 고른 AA 사이즈의 커피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左: 커피스트 메뉴판, 右: 커피스트의 고노 드립퍼로 추출한 케냐 AA

꼭 커피에 대한 정보를 짚고 넘어가지 않더라도 믿고 마실 수 있는 그런 커피가 이곳에 있었습니다. 자세한 설명과 정보가 커피의 질을 담보한다는 믿음은 어찌보면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라는 문화가 낳은 편협한 사고의 결과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문득 듭니다. 커피 한잔에 생각이 너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케냐 AA 니에리 탐바야 커피를 고노 드립퍼으로 추출한 커피는 기존의 화려한 산미가 강조된 스페셜티 커피로스터들의 약한 배전도와는 다른 개성을 가진 케냐를 보여줍니다. 발랄한 소녀가 어느덧 의젓한 숙녀로 변하듯 배전도가 좀 진행된 케냐는 진중한 단맛과 바디를 보여주더군요.

주소: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2가 1-355 1층

영업시간: 월-토 10:00 - 23:00 / 일 12:00-22:00

전화: 02-773-5555

|나무사이로 매장 내부의 창

가끔 커피를 보고 있으면 커피의 오일 위에 반사된 나의 모습이 비칠 때가 있습니다. 근래 맞은편 한옥 가정집으로 이전한 나무사이로는 국내에서 90+ 커피(90점 이상의 커피)를 주로 취급하는 로스터리 카페입니다. 나무사이로의 배준선 대표님 역시도 경복궁에서 10년 이상 커피를 해오신 분입니다.

|나무사이로 나인티플러스 시먼 어베이, 나무다크 블렌드로 추출한 카페라떼

의도든 아니든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는 디테일들이 곳곳에 숨어있는 곳입니다. 전체적인 카페 컨셉은 마치 북경의 전통 가옥에서나 볼 수 있는 사합원?과 같이 벽과 ㄴ형태의 테이블 공간이 중앙의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로 사방이 벽으로 둘러 있는 공간의 답답함을 해소합니다.

|나무사이로 입구에 위치한 브루잉 바(Brewing Bar)

커피는 그간 풍문으로만 들었던 에티오피아 시먼 어베이 N3입니다. 한잔에 2만원을 호가하는 커피로 90+ 커피의 네키세 種 가운데 최상의 종으로 재배, 수확, 가공을 엄격하게 관리하여 커피가 가진 향과 맛을 극대화한 커피입니다. 과정이 까다로운 것을 감안하더라도 가격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내 부담을 잊어버릴만큼의 향과 맛을 선사했습니다. 체리를 그대로 짜넣은듯한 밀도감 있는 과일의 뉘앙스는 기존의 내추럴 커피에서 얼핏 보였던 열대 과일들이 또렷하게 입안 가득 자국을 남기고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내자동 196번지 1F

이메일: cafenamusairo@gmail.com

|로스팅 룸이 위치해 있는 커피투어 3호점에 위치한 프로밧 P5

커피투어 1호점의 시작은 약7년전 내수동의 자그마한 공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점심시간 줄이 늘어서는 복작복작한 매장이지만 어느덧 커피투어는 3호점을 열어 커피투어의 커피를 조금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로스팅을 비롯해서 비지니스 커핑을 진행하는 곳으로도 자주 사용되는 커피투어 광화문점은 좁은 골목길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커피투어 나성은 바리스타의 하리오 V60 추출 모습

추천해주신 니카라과 세로데 지저스 파카라마種 커피를 드립으로 주문했습니다. 커피투어에서는 하리오 V60(VDG-01B) 드립퍼를 사용하여 16g의 분쇄원두를 넣고, 95℃내외의 물 온도로 200㎖정도의 한잔을 추출합니다. 홈카페에서도 충분히 적용해볼만한 추출 레시피입니다.

|左: 커피투어의 브루잉 스테이션, 右: 하리오 V60으로 추출한 니카라과 세로데 지저스 파카라마 품종의 드립커피

주소: 서울시 종로구 필운동 278-6번지 신우빌딩 1F

전화번호: 02-733-6612

경복궁

그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진 않지만 비열하고도 처절했던 식민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숱하게 훼철당하며 지금껏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복궁처럼 본디 있던 자리를 지키며 커피의 새로운 물결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있는 카페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요즘입니다.

※추신: 짧은 일정이라 스페셜티 카페임에도 방문하지 못한 곳이 많았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