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투어리스트

커퍼스 경산센터, 엘 아르카(El Arca) 출항, 커피 방주(方舟)

2016-09-05  



엘아르카_1.jpg




커퍼스 경산센터, 엘 아르카(El Arca)
출항, 커피 방주(方舟)



성경의 창세기에는 ‘노아의 방주’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이 범죄 한 세상을 심판하기 대홍수를 일으키는데, 노아와 그의 가족은 거대한 방주(方舟)를 만들어 목숨을 보존한다는 내용이다. 이때 노아는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물도 함께 방주에 태우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다. 방주는 배이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담는 그릇의 역할도 한 셈이다. 여기에 또 다른 방주가 있다. 이 방주에는 사람도, 동물도 아닌 커피가 담겨 있다. 변화무쌍한 커피의 매력을 가득 채운 커피 방주, 커퍼스 경산센터 엘 아르카를 찾았다.  


무난한 것보다는 특별난 게 좋아
엘 아르카(El Arca)의 김은철 대표는 무난한 커피보다는 향이든, 맛이든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 커피를 선호한다. 특히 강하고 묵직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를테면 진득한 여운을 주는 커피다. 그래서 커피를 추출할 때도 커피의 성분을 최대한 응축시키는 것에 집중한다. 주로 고노 드리퍼를 사용해 점 드립 방식으로 추출하는데, 100mL 내외의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 35g의 커피를 사용하는 것이 기본 레시피다. 이렇게 추출한 커피는 수 시간을 센 불에 팔팔 우린 설렁탕처럼, 진국이라 할 만 하다. 

하지만 우려도 있다. 로스팅 레벨이 약하지 않은 편이어서, 그의 레시피처럼 커피를 잔뜩 담아 천천히 추출한 커피가 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추출도 일종의 요리라고 할 수 있어요. 좋은 재료를 준비했다면 요리도 잘해야겠죠?” 김 대표는 로스팅 후 원두의 숙성기간을 따로 두지 않는다. 대부분 바로 사용하는 편이다. 점 드립은 커피성분을 최대한 끌어내는 동시에 추출 시 발생하는 가스를 제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커피가 가진 좋은 향미만을 담아내는 것이 김 대표의 포인트다. 묵직한 향미가 인상적이지만, 커피를 마신 뒤, 목구멍을 통해 슬며시 올라오는 잔향도 매력적이다.



엘아르카_2.jpg


결과는 좋지만 사용하는 커피양이 상당히 많은 편이고, 추출 과정도 길고 민감하다. 커피 한 잔을 추출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하지만 얻는 것도 많다. 엘 아르카에서만 마실 수 있다는, 특별한 커피라는 사실이다. 매장에서 원두를 판매하기도 하지만, 같은 원두를 사용하더라도 집에서는 진득한 매력을 내뿜는 그 맛을 똑같이 즐길 수 없다. 사람들은 결국 다시 매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엘 아르카의 전문성이자 경쟁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특별한 것을 선호하는 건 김 대표만의 취향이 아니다. 김 대표는 오히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난한’ 커피는 자칫 대중들에겐 아무런 특징 없는 커피일 수 있어요. 온갖 맛과 향이 비슷하게 뒤섞여 있기 때문에, 특별히 훈련받거나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특징이라고 하는 부분을 잘 캐치하지 못하는 거죠.” 오히려 한, 두 가지의 특징이 두드러질 때 사람들이 반응한다는 것이다. 물론 김 대표는 이것을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바꿔나가야 할 엘 아르카의 숙제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적어도 그가 경험했던 지역 내 손님들의 경우는 그렇다.



엘아르카_3.jpg


김 대표가 추구하는 커피는 이렇게 분명한 캐릭터를 갖고 있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손님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저희가 추구하는 커피는 분명해요. 하지만 강배전 커피는 엘 아르카에서 특별히 뛰어난 커피 중 하나일 뿐이에요. 카페에는 워낙 다양한 손님들이 오시죠. 우리의 캐릭터, 중심만 잘 잡고 있다면 가능한 한 모두 품고 가려고 해요.” 엘 아르카는 강배전 커피를 가장 잘 하지만, 중배전 또는 약배전의 스페셜티커피 역시 그에 못지않은 퀄리티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노 드리퍼가 아니어도, 점 드립 방식이 아니어도, 어떠한 스타일에도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



엘아르카_4.jpg


동네 카페를 벗어나다
엘 아르카는 김은철 대표와 김경미 대표, 두 부부가 이끌어간다. 로스팅과 브루잉 등 커피에 대한 부분은 김은철 대표가 이끌고 에스프레소 중심의 메뉴나, 매장 관리 등은 김경미 대표가 담당한다. ‘서로 잘 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두 대표는 같은 걸 노력하기보다는 각자의 영역을 넓혀가는 방법을 택했다. 

엘 아르카 이전에 두 부부는 ‘인투(INTO)’라는 카페를 5년 동안 운영한 바 있다. 인투는 작은 동네 카페였다. 로스터리 카페로서 핸드드립, 스페셜티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긴 했지만 동네 주민들에겐 ‘사랑방’에 가까웠다. “놀자판이었죠(웃음). 손님들 오시면 ‘이 커피 맛있는데 한 번 마셔봐’라면서 마구 퍼주기도 했고... 커피 모임도 자주 가졌어요. 커피로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5년 동안 손님들과의 관계도 상당히 친밀해졌다. 첫째 아이는 손님들과 함께 키웠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엘아르카_5.jpg


하지만 엘 아르카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두 대표의 방향성은 ‘동네 카페’를 벗어났다. 디자인도, 콘셉트도, 가격도 달라졌다. 식구가 늘면서 책임져야 할 이유가 많아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동네 카페’의 한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혹은 경산에서 핸드드립으로 아무리 유명해진다고 해도, 실제로 대중들에게 커피문화라는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은 얼마 되지 않더라구요. 동네 카페만으로는 더 성장할 수 없구나, 제대로 갖춰서 해야겠구나 싶었어요.” 
브랜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엘 아르카는 ‘방주’를 뜻한다. ‘커피의 모든 것을 담겠다’는 의미로, 대표 로고 역시 방주를 형상화했다. 앞서 이야기한 다양한 기호와 추출방법에 대한 열린 생각들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방주는 엘 아르카에서 이뤄지는 모든 행위의 시작점이고, 정체성을 분명하고 뚜렷하게 만드는 장치다. 



엘아르카_6.jpg


인투를 운영할 때도 이러한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직접 해결하려다보니 어느샌가 처음 추구했던 내용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기 일쑤였고, 정체성을 잃어버릴 때도 많았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문 디자인 업체에 의뢰했다. 두 대표는 업체와 오랜 시간을 논의하면서 엘 아르카의 생각과 방향을 정리했고, 업체는 그러한 핵심을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엘 아르카의 모든 시각적인 요소는 해당 업체와 논의하며 디자인의 일관성을 지켜가고 있다.
 
그러면서 두 대표는 커피와 관련된 모든 행동을 새롭게 설정하기 시작했다. 제품 생산부터 매장 내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엘 아르카만의 합리적이면서 효율적인 기준을 세워서 매뉴얼로 만들었다. 이 매뉴얼은 장차 엘 아르카의 미래를 담보할 무기가 될 것이다.



엘아르카_7.jpg


자본력을 앞세우는 대형 프랜차이즈나 업체들의 홍수 속에서 작은 로컬 카페들은 점점 버텨내기가 힘겨워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소비자들의 눈은 대형 업체들의 조직적이면서도 세련된 브랜딩에 익숙해졌다. 로컬 카페들이 커피에 대한 전문성과 유연성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노력하지만, 그 간극은 여전히 멀다. 

“커피만 맛있다고 능사가 아니죠. 커피 맛없어도 장사 잘 되는 곳 많잖아요?” 경쟁력 있는 브랜딩을 위해 두 대표가 애를 쓰는 이유이다. 사실 이미 다양하고 좋은, 카페 문화는 우리 곁에 있다. 단지 표현하고 알리는 방법이 부족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방주 로고를 보면 엘 아르카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다. “우리가 잘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획일화되지 않으면서도 특별함을 지닌,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걸 전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엘아르카_8.jpg


서로가 통할 때 모두가 만족스럽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가장 많이 언급됐던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소통’이었다. 두 대표는 ‘소통’을 엘 아르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꼽았다. “카페라는 공간에서는 손님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저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우리의 몫인 거죠.” 만족의 주체는 당연히 손님이다. ‘언제나 만족스러운 커피를 위한’ 소통인 셈이다. 

소통을 위해 엘 아르카는 후불 계산을 원칙으로 한다. 커피를 마신 뒤 커피값을 계산할 때 ‘커피 맛은 입에 좀 맞으셨나요?’라고 묻기 위해서다. 작은 질문이지만 소통이 시작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드백이 정확해야 만족스럽게 응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엘아르카_9.jpg


하지만 늘 시원하게 소통이 잘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많은 손님이 맛에 대한 질문 자체를 불편해해요. 분명 커피를 마신 뒤 고개를 갸우뚱 거리 거나 만족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는데도 커피 맛을 물어보면 ‘괜찮다’라며 대답을 흐리는 경우가 많죠.”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상대방도 같은 생각이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태도는 소통의 방식이 아니다. 손님들과 소통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살피면서 먼저 다가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런 노력 덕분에 소중한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두 대표는 이런 대답을 늘 기다리고 바라고 있다. 

바(Bar)를 가장 큰 공간에 배치한 것도 손님들과 좀 더 가까이에서 소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덕분에 엘 아르카는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커피보다 핸드드립 커피 수요가 많은 편이다. 



엘아르카_10.jpg


좀 더 구체적인 소통을 위해서 두 대표는 작은 장치를 고안했다. ‘테이스팅 테이블’이라는 작은 카드를 마련한 것인데, 이 카드에는 손님들이 선호하는 향미에 대한 정보가 간단하게 기록된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손님의 기호에 맞는 커피를 추천하고, 커피를 추출할 때도 선호하는 향미를 부각하거나 줄이는 식으로 활용한다. 맞춤 서비스를 위한 데이터베이스인 셈이다. 소통뿐만 아니라 고객 응대와 전문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방법은 조금 더 세련되고 체계화됐지만, 소통에 대한 생각은 인투부터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손님들과 커피를 이야기하면서 소통할 때 가장 큰 만족을 느껴요. 이런 만족감은 다시 손님들과 나눌 수 있죠. 그것이 바로 커피가 가지는 무궁무진한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사실 소통에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뼈아픈 실패의 경험도 많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두 대표는 알고 있다. 



엘아르카_11.jpg


엘 아르카가 꿈꾸는 커피는 ‘매일 먹고 싶은 커피’다. 사실 이것은 커피에 대한 정의라기보다는, 엘 아르카라는 공간에 대한 정의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여기 오면 언제나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커피가 있다’라는 신뢰를 줄 수 있는 곳, 두 대표가 꿈꾸는 방주의 모습이다.      



엘아르카_12.jpg


“어떤 형태나 형식이든지, 커피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개성과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표현하고 즐길 수 있는 카페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저희 엘 아르카도 커피가 맛있는 곳, 사람 냄새가 나는 곳,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을 담는 공간으로 키워나가고자 합니다.” 경산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커피 방주의 순항을 기대한다.


엘 아르카 : 경북 경산시 백양로 29길 3-11 1층 



강승훈   , 전 월간 Coffee&Tea 취재기자, 프리랜서
Email: contents@contentsma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