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퍼스 양산-평산센터, 레마프레소

외부기고컨텐츠 2017.01.06 04:32:49 banner: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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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마프레소, 오늘도 커피는 계속된다




어느 산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커피인들에게도 ‘지속가능성’은 중요한 문제다. 생존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연이은 불황과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이 그 배경이다. 그래서 이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커피산업의 흐름을 민감하게 읽고 대중들의 반응을 자세히 살펴야 하며, 또한 자신만의 길도 만들어 가야 한다. 커피는 완성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커퍼스 양산-평산센터 레마프레소(Remapresso)를 찾았다.


오랜 경험, 그러나 안주하지 않는다

레마프레소의 임송림 대표의 커피 이력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 대표에 의하면 바리스타로서의 첫 시작은 91년도. 물론 중간에 다른 업종으로 전향하기도 했지만 식품과 커피를 오가며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경력을 쌓은 그였다. 임 대표는 당시를 ‘바리스타가 좋았던 시절’이라고 회상한다. 전문직이라는 인식이 훨씬 강했던 때란다. “알다시피 예전에는 일본식 커피가 주류였죠. 베이크드(Baked) 방식으로 로스팅하는 진한 커피요.” 카페들은 드립할 줄 아는 바리스타를 ‘모셔갔다’고 할 정도로 대우받았던 시절이다. 일종의 ‘커피 장인’ 대접을 받은 셈이다.

오랜 시간 커피를 접하면서 임 대표에게는 몇 번의 전향점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큐그레이더 교육을 접했을 때였다. “커피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경험을 강조하는 일본과는 다른 방식이었죠.”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오랜 시간 익숙해져 있던 습관이나 지식을 바꾸거나 버려야 했지만, 상호보완의 효과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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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산업이든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는 일은 자연스럽다. 산업은 더욱 깊어지고 다양해진다. 새로운 이론이 주창되고 더 나은 기술이 등장난다. 현대 커피산업의 총아로 여겨지는 에스프레소머신의 등장이 그랬고, 이제는 하나의 형태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추출방식을 지닌 머신이 개발된다. 어제의 지식이 오늘의 정답이라 할 수 없는 시대, 큐그레이더가 3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배경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임 대표의 커피는 전문성과 대중성, 두 마리의 토끼를 향해 있다. 전문성은 산미를 비롯한 다양한 뉘앙스의 향미 등을 의미하고 대중성은 구수함과 단맛 혹은 탄 맛을 가리킨다. 좀 더 영역을 넓힌다면 생두 가격의 차이나 로스팅의 차이를 뜻하기도 한다. 전문성과 대중성은 보통 상반되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를테면 스페셜티와 커머셜, 라이트 로스팅과 다크 로스팅, 산미와 구수함처럼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은 배제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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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임 대표의 지향점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콜라도 만드는 회사가 다양하지만 코카콜라를 최고로 치잖아요? 그 차이는 전문성에 있다고 봐요. 과거에 대중적인 맛이라고 할 때는 쓴맛과 단맛이 섞여 있는 구수한 뉘앙스가 주였다면, 최근에는 단맛과 함께 향이 좋은 커피가 흐름인 것 같아요.” 임 대표는 스페셜티나 씨오이 같은 향미 위주의 커피가 등장하면서 생긴 변화라고 설명한다. 신맛과 향미에 대한 선호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어서, 대중적인 뉘앙스를 추구하면서도 미묘한 변화와 차이를 표현할 수 있는 전문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임 대표의 로스팅은 과거 겪어왔던 일본식 스타일이 제법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 정상적인 범주이긴 하지만 로스팅 시간은 약간 긴 편이다. “로스팅 초반에 이뤄지는 수분 날리기나 휴지기를 조금 길게 갖는 편이예요. 좋은 콩이라도 자칫 안 좋은 뉘앙스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안정적인 단맛과 적절한 향미를 발현시키려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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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한국 커피산업의 변화를 지켜본 임 대표다. 커피인으로서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선 업계와 대중의 변화 모두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커피 관련 자격증은 그가 어떠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10년 전만 해도 커피교육은 ‘이건 이거다’라는 주입식이 대부분이었잖아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요즘은 현상에 대한 이유를 파악하고 설명하는 접근이 필요하죠. 연구하고 공부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중요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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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핑, 향미에 대한 경험치가 풍부해야 해

임 대표에게 커핑을 묻자 자연스럽게 로스팅 이야기를 꺼낸다. “커핑은 로스팅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로스팅이 제대로 된 건지, 커피의 특징을 잘 살렸는지 확인할 때 필요하죠.” 기계적인 프로세스만으로는 절대 완벽할 수 없는 게 로스팅이다. 로스터는 변화무쌍한 변수들이 만들어내는 오차를 감각을 통해 민감하게 확인해야 한다. “커핑은 특별한 스킬이 없어요. 룰이 동일하기 때문에 로스팅 결과물이나 콩의 상태를 체크하기가 좋죠.” 

임 대표는 커핑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향미에 대한 경험치’라고 강조한다. “커핑할 때  자주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가 ‘아~ 이거 뭐였지? 어디서 맡았던 향(맛)인데...’예요.” 특히 커핑을 처음 접한 사람일수록 이런 반응이 잦다. 향미에 대한 경험치가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감각을 날카롭게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민감한 감각이라도 그게 어떤 향미인지 자신이 인지할 수 없다면 곤란하다. 이런 상태로 커핑을 하다간 궁금해만 하다가 끝난다. 그래서 임 대표는 가급적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경험하면서 향미의 경험치를 풍부하게 길러 놓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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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미를 인지하고 표현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타인과의 소통도 가능해진다. 감각은 주관적이라서 아무리 특징적인 향미라도 모두가 같은 기준으로 느낄 수는 없다. ‘체리’와 ‘아사이 베리’의 차이처럼 특정 향미에 민감하거나 둔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표현이다. 전체적인 뉘앙스를 특정한 대상을 빗대어 설명하더라도 자신이 느낀 특징적인 향미에 대해선 보다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상대방도 그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경험치라는 말은 할수록 늘어난다는 뜻이다. 집중력을 반복적으로 발휘하면서 감각을 민감하게 벼리고, 경험치는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다. 보통 감각은 신체 나이와 비례하지만 속도나 수준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노력에 따라서 그 속도를 상당히 늦추거나, 상회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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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임 대표의 수강생 중에는 그런 사례가 있었다. “40대였는데, 그분이 처음 배우러 왔을 때만해도 향미에 대한 경험치나 감각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기본적인 것만 간신히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정도였죠.”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 수강생은 이후 커핑과 로스팅 교육, 바리스타 스킬, 큐까지 꾸준히 공부했고, 부단한 훈련을 통해 신체적인 열세를 극복했다. 급기야 2017KCTC 부산경남권 우승해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출전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제는 커피인으로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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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장사 7년, 커피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양산에서 레마프레소가 커피향을 뿜기 시작했던 것이 7년 전이다. 당시 지역에 커피전문점이라고는 레마프레소가 유일했다. “동네 장사죠. 주민들의 기호에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네 명이 와서 두 잔을 시켜도 오케이, 리필을 해달라고 해도 오케이였어요.” 단골 장사였다. 다른 지방처럼 이곳 역시 원두커피 문화는 없었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은 점차 레마프레소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4년 전 커피교육과 원두제조를 위해 공간을 확장하면서 사람들에게 레마프레소는 ‘커피전문점’이라는 인식이 더욱 선명해졌다. 

임 대표는 매장에는 두 가지 종류의 블렌딩이 있다. 프리미엄 버전과 골드 두 가지가 있는데 추구하는 캐릭터는 서로 다르지만 두 블렌딩 모두 산미는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 “지역 주민들이 어느 정도 산미에 대한 기호가 생겼다고 봐요. 아마 7년 동안 입맛이 길든 게 아닌가 싶어요(웃음).”

지역 주민들과 커피로 가까워지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 중의 하나가 퍼블릭 커핑이다. 5년 전부터 진행해온 퍼블릭 커핑은 다양한 커피의 향미를 알리기 위한 자리다. 커핑에 대한 기본 프로토콜을 친절히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약식 커핑 폼을 제작해 일반인들이 커피에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매번 스페셜티나 씨오이, 대륙별 커피 등 뚜렷한 주제를 다뤄서 참여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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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노력 덕분에 원두 판매는 매년 꾸준히 늘었다. 사실 동네 장사라는 게 ‘스페셜티커피’나 ‘씨오이’ 같은 걸 아무리 싸게 판다고 해도 정보가 제한된 경우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재구매가 지속해서 이뤄지고, 심지어 구매량이 늘어났다면 분명 좋은 신호라고 할 수 있겠다. 지역 내에 커피 문화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7년 동안 동네 장사를 이어오고 있는 임 대표의 바람은 소박하다. “건물주가 쫓아내지만 않는다면 계속 있고 싶어요(웃음). 큰 바람보다는 그냥 주민들이 ‘커피가 맛있는 집, 커피하는 사람들’ 이렇게만 여겨준다면, 그게 제일 기쁜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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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임 대표는 좀 더 바빠질 것 같다. 산지에 대한 여러 계획들이 있는데, 조만간 베트남을 찾아 새로운 커피에 대한 가능성을 찾으려 한다. 6월 정도에는 현재 다이렉트 트레이딩하고 있는 브라질을 방문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품질을 유지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 한다. 그동안 꾸준히 교류해오던 일본 커피인들과 의기투합해 일본에는 없던 ‘교육장’ 설립도 타진 중이다. 일본을 스페셜티커피의 선진국으로 여기면서 커피든 정보든 ‘받는 입장’이었던 우리였다. 하지만 커피교육만큼은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세계 커피시장의 흐름에 앞서 있다는 게 임 대표의 생각이다. 여기에 직원들과 함께 KNBC 대회도 준비할 계획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레마프레소의 반가운 소식들을 기대한다.


레마프레소 
경남 양산시 번영로 100(평산동 445)



강승훈   전 월간 Coffee&Tea 취재기자, 프리랜서
Email: falling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