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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기고자 강승훈(프리랜서, 전 월간 Coffee&Tea 취재기자, falling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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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퍼스 김해센터, 카페 고운동

커피로 부르는 희망가




불의의 사고로 당하면서 삶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불행 앞에서 방황을 거듭했다. 하지만 커피를 만나면서 삶은 다시 희망을 싹 틔웠다. 그리고 이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커피를 나누고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커퍼스 김해센터, 카페 고운동을 찾았다. 



지하 37층에서 만난 커피

혈기왕성 했던 30대 초반, 카페 고운동의 김판수 대표는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다 사고를 당했다. 생사의 위기를 넘나들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사고 후 합병증으로 병원에서 꼼짝 없이 7년여를 보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죠.” 김 대표는 매일 절망과 싸워야 했다. 죽음까지 떠올리던 그 시간들은 지금도 좀처럼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가까스로 상태가 회복되면서 다시금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 만큼 재기에 대한 바람이 컸고, 2년의 시간을 준비해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기대만큼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세상이 변했던 것이다. 그 속에서의 관계도 너무 몰랐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일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심지어 실패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까지 져야했다. 생사의 기로에서 이제 막 일어섰던 그에겐 가혹하고, 억울한 일이었다. 김 대표는 당시를 ‘지하 37층’이라고 회상한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밑바닥 중의 밑바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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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정리된 후에 그의 주머니엔 몇십만원만 남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싫어져서 도시를 떠났다. 좋아하던 바닷가에서 한달만 더 살아보겠다며, 동해로 향했다. “머리속에 있던 모든 걸 버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친구들이 가끔 들러서 작은 위로와 도움을 건넸다. 방황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김 대표에게 태국행의 기회가 생겼다. 호주 유학시절 알았던 지인을 통해 태국 국제학교에서 한국어 강의를 할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다. 한숨만 쉬고 있자니 뭐라도 하는 게 좋겠다 싶어 제의를 수락했다. 


태국에서의 생활은 특별한 일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태국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잠시 잊고 있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던 중 태국의 커피를 접하게 됐는데, 김 대표는 진지하게 빠져들었다. “이상하게 커피가 별로 맛이 없었어요. 생산지라는데 말이죠. 한국에선 제법 맛이 있었거든요. 차라리 한국에서 커피를 배워서 태국에서 장사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소비지에서 생산지로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역발상이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꼭 터무니 없지만은 않았다. 사업적으로 풀릴 만한 가능성은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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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김 대표는 먼저 커피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고 나이까지 많았다.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책을 살 돈이 없어서 이곳저곳의 도서관을 전전하며 책을 빌려다가 커피 공부를 시작했다. 어쩌다 돈이 조금이라도 생길 때면 책과 기구를 사는데 썼다. 그렇게 커피에 대한 지식들이 쌓일수록 공부의 영역은 넓어졌다. 핸드드립을 공부하면서 로스팅이 궁금해졌고, 로스팅을 하다 보니 커피의 맛을 볼 줄 알아야겠다 싶어 커핑으로 이어졌다. 점점 커피에 빠져들수록 머릿속에선 태국이 사라졌다. ‘어떻게 하면 커피를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만 맴돌았다.


2년여를 공부하면서 어느 정도 지식을 쌓았다. 이제는 혼자만의 공부가 아닌 커피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겐 여전히 커피에 대한 열망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큐그레이더 마지막 테스트는 돈이 없어 응시를 못할 만큼, 현실은 막막했다. 김 대표는 답답한 마음에 커피를 배우던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고 해답을 얻는다. “‘공부를 하면서 준비해라’ 라고 하시더라고요.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는 언제든 온다는 말씀이셨죠.” 용기를 얻은 김 대표는 더 열심히 커피공부를 위해 힘썼다. 하루에 16시간 하는 고된 아르바이트와 커피공부를 하면서,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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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그레이더를 딴 후에는 친구의 카페 옆에 작은 공간을 얻어 작업실을 열었다. 샘플 로스터기 하나를 들고 나름의 연구를 시작했는데, 하루에 10시간씩 로스팅을 하며 커피를 공부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작업실을 오가는 몇몇 사람들로부터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싶다며  커피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 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시작이였다. 이후 사람들과의 관계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그렇게 교육을 하다 보니 학교나 단체 등에서도 커피 강의 요청이 잇따랐고, 열심히 강의를 다녔다. “준비를 하니까 정말 기회가 온다는 걸 깨달았어요. 여기까지 크게 이룬 것은 없지만, 지금도 늘 생각해요. 그래도 하고 싶은 커피를 하고, 그 커피로 여러 가지 또 다른 일들을 할 수 있구나. 참 잘된 것 같아요.” 


이후 크고 작은 기회들이 이어졌던 김 대표는 김해 커피교육센터(달카페바리스타 학원)와 카페 고운동까지 운영하며 커피 교육과 보급에 힘쓸 수 있었다. 한편, 자신의 위치에서 꾸준히 커피를 공부하고 준비해왔던 김 대표의 노력은 올해 의미 있는 결실을 맺기도 했다. 교육센터를 더 좋은 자리에 마련하였고, 2015년골든커피어워드에서는 하우스블렌딩 부문을 수상을 하며 기쁨을 더했다. 카페 역시 단골 손님들로부터 사랑받는 공간으로 자리잡으면서 순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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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희망의 씨앗을 심다

그렇게 커피는 김 대표에게 희망이 되었다. 이제는 그 커피가 자신에게 그러했듯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 믿는다. 그가 운영하는 학원에서는 양성된 커피강사들은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커피를 교육한다. 바로 ‘꿈 찾기’이다. 강사들에게는 사회활동의 계기를 만들고, 수강생들에게는 커피를 통해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김 대표가 커핑 모임을 시작한 것도 커피를 알고 싶고, 배워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커피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커피산업은 나날이 성장하지만 지역별로 편차는 여전히 심한 편이다. 김해 역시 김 대표가 커핑 모임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공개적으로 커피 맛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소통의 자리가 거의 없었다. 작게라도 해봐야겠다 싶어 커핑 모임을 시작했는데, 결국 그 모임을 통해 커퍼스와 인연까지 맺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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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커피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근무하는 사람들 중에서 커피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로봇처럼 추출 과정만을 반복할 뿐이죠. 그런 친구들에게 ‘이런 커피도 있다’고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죠.” 그의 마음속에는 게이샤 내추럴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여전하다. ‘어떻게 이런 커피가 있을까?’. 커피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기억이자, 지금까지 그를 이끌었던 동력이다. 김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그저 돈을 벌기위해 잠시 바리스타가 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커피로 꿈을 꾸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커피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커피 산지로도 향해 있다. 작년과 올해, 김 대표는 커퍼스의 여러 센터장들과 함께 콜롬비아 안티오키아 커피 콘테스트에 국제 테이스터로서 참가했다. 세계 커피인들과 소통하면서 좋은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만큼 무리한 스케쥴을 소화하면서 그의 컨디션은 급격이 나빠졌고, 결국 한 달 동안 현지 병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현지에서 한 수녀를 알게 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러면서 콜롬비아의 실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병원에 있으면서 여러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위해 제가 할 일이 많겠다는 걸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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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서 커피는 일상의 음료로 늘 마시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간단한 기구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다. 생산지이기 때문에 누구나 커피전문가일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태국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커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우리나라와 같은 소비국의 일반인보다도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그들은 자신들이 생산해낸 커피가 얼마나 다양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노 수녀는 한국에서도 커피에 관심이 많다는 것에 신기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김 대표는 커피 교육을 통해 현지인들에게 커피가 일상의 음료를 넘어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해요. 저 스스로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죠.” 지금의 그가 있기 까지 수많은 도움이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회복하는데 보태쓰라며 후원을 보내기까지 했다. 그 마음들에 감동해 눈물을 훔친 일도 많았다. 커피라는 희망을 꿈꾸기까지 삶의 밑바닥에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고마운 손길들이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 시작한 삶을 통해 갚아가야 할 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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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김 대표는 노 수녀를 비롯해 콜롬비아 현지인들이 자신에게 베풀었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한다. 자신들도 어려울 텐데 몸이 아픈 김 대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나누며 마음까지 더했던 그들이었다. 여러 가지 계획들을 구상 중에 있다. 현재 매달 한국과 콜롬비아 사랑의 센터, 두 곳에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으며, 커핑 모임을 진행할 때마다 소정의 참가비를 모아서 송금하고 있다.


미각을 깨우는 그곳, 카페 고운동

카페 이름인 고운동은 지리산 댐 건설로 수몰된 동네의 이름이다. 김 대표에겐 군생활의 추억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이제는 물 아래 잠겨버린 고운동은, 청춘의 빛나던 그때의 마음을 담은 이름이다. 언젠가 카페를 열게 된다면 고운동으로 이름을 정하겠다고 했던 것이, 실제로 이뤄진 것이다. 학원과는 목적이나 성격이 다르다. 그저 사람들과 커피로 만날 공간이 필요해 마련한 공간이다.


카페는 확실히 커피에 방점이 찍혀있다. 특히 스페셜티커피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데, 좋은 커피를 다양하게 보유하는 것을 넘어서서,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일반 카페에 15~20% 저렴한 가격이다. “산지에서 느꼈던 건데, 커피를 생산하는 농장이 조금만 더 신경 쓰면 스페셜티커피 같은 질 좋은 커피의 생산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부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돌려주면서 커피의 품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과 동시에, 소비자들에게도 가격에 대한 저항을 줄이면서 소비를 촉진시키겠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특성 상 스페셜티커피가 비싸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만,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합리적인 가격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고운동은 김 대표의 목표와 이상을 보이는 자리이다. 카페에서 수익을 남기겠다는 생각은 없다. 납품이나 교육사업을 통해 보전하면서, 카페는 미각의 계몽운동을 펼치는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에 힘을 다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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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 대표는 커핑은 맛을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설명한다. “맛은 모호해질 수 있어요. 주관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커핑은 기본적으로 품질을 평가하기 위해 이뤄져요. 무엇이 좋고 무엇이나쁨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야 하죠.” 기준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이 기준은 공통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그린빈 바이어, 로스터, 바리스타처럼 분야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린빈 바이어에게 커핑은 클린컵을 찾기 위함이 우선이다. 생두 350그램에 있는 결점두의 숫자는 결국 커피 맛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커피 본연의 맛을 구분할 수 없다. 결국 순도 높고 선명한 커피의 특징을 구분 짓기 위해 필요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로스터나 바리스타 역시 자신의 결과물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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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핑은 커피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필요로 한다. “커피의 맛이 ‘왜 그런지’ 알기 위해서죠. 원인을 파악하고 조치하거나 대체할 수 있어야 해요.” 세상에는 너무 많은 종류의 커피가 있고, 작황도 매년 일정하지 않다. 장담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점은 그때그때 파악해야 하고, 조치 또한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고 커핑이 커피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할 수 없다. 커피의 일부분으로, 좋은 커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일 뿐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들도 여전히 많다. 때문에 김 대표는 기준점이나 감각을 오용해서는 안 되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보다는 균형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포인트는 조금 다르지만, 일반인에게도 커핑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크게는 ‘미각의 계몽‘이다. 다양한 커피의 세계만으로도 즐거운 일인데, 그 속에서 자신의 기호에 맞는 것을 골랐을 때, 그 기쁨과 즐거움은 특별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새로운 커피에 대한 호기심은 기호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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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지역 커피인들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삶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 내의 예술문화마을조성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커피로 희망을 꿈꿨던 김 대표는 삶의 걸음도 커피와 닮기를 바란다. “좋은 커피는 균형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여러 가지 캐릭터가 매력적이긴 하지만요. 이런 커피로 통해 조화로운 삶이 되었으면 해요. 서두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는, 적당한 타이밍을 맞춰 살 수 있는 삶이요.” 



| 카페 고운동 주소

김해시 장유면 덕정로 138번안길 55 

| 기고자 정보

강승훈(프리랜서, 전 월간 Coffee&Tea 취재기자, falling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