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투어리스트

성수동에 새로 생긴 미니멀한 무채색의 공간, 칸토 카페

2020-03-31  




성수동에 새로 생긴 미니멀한 무채색의 공간, 칸토 카페


우연히 지인의 SNS 피드에서 발견해 꼭 방문해야겠다고 다짐한 곳이 있다. 한창 흑력이 떨어져 가고 있던 찰나에 잘 됐다. 다들 어수선한 시기를 정면 돌파해 꽃을 보러 가지만 필자는 무척이나 애정하는 동네인 성수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극한의 미니멀함을 위해 필요한 것을 남기고 다 빼버린, 그래서 컬러마저 전부 빼버린 무채색의 공간이자 필자의 흑력 충전소가 될 이곳은 칸토카페이다.


l 필자가 굉장히 좋아하는 스타일의 심플한 입구


성수역 4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요새 코로나가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 찬, 요즘 핫한 아르코를 만나게 되는데, 하긴 필자도 커피 마시러 나왔으니 딱히 할 말은 없고 지나가도록 한다. 그렇게 5분 정도를 더 걸으면 작은 입간판 앞에 도착한다. 하지만 조심하시라. 바로 옆은 성수에서 핫플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오르에르가 있어서 시야를 뺏길뿐더러 초행길엔 작은 골목을 들어가야 나오는 작은 입구를 못 찾을 수도 있다. 


l 위쪽은 밝게 바닥은 어둡게 해 작은 공간임에도 꽤 깊어 보이도록 했다.


입구부터 흑력충만한 문이 활짝 열려있어 정신을 잃은 채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참, 이 공간은 지하에 있다. 계단을 내려가야 하니 무릎이 좋지 않은 만성 관절 질환을 앓고 계신 분들은 조심하시길 바란다. 계단 몇 개만 내려가면 무채색의 공간이 눈 앞에 펼쳐진다. 혹시 '매트릭스'라는 영화 기억하는가. 온통 하얀 공간 안에 있던 키아누 리브스를 넘어 저 먼 뒤에서 그래픽이 쏴악 달려왔던 그 장면을 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l 검은 테이블의 유일한 단점은 흘린 빵가루가 너무 잘 보인다는 것이다.


주말이라 자리가 있을지 걱정하며 들어갔지만, 올해 1월 오픈해서 그런지 다행히(?!) 아직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는지, 편하게 자리를 골라서 앉을 수 있었다. 역시 혼자인 필자는 쭈구리처럼 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 공간엔 2인 테이블 10개가 준비되어 있어 20명 정도는 여유롭게 앉을 수 있다. 4명 이상이 방문한다면 중앙의 테이블을 합치면 되지만 누군가 앉아있다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l 덩어리로 나뉘어진 바는 왠지 퀴즈쇼의 그것 같기도 하다. 


모르긴 몰라도 요즘 새로 생겨나고 있는 카페들의 특징이라고 하면 바는 낮아지고, 넓고 길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딱 필요한 공간만 빼놓고는 전부 삭제해버렸다. 어쩌면 바리스타 입장에서도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로 떨어져 있는 바에 필요한 장비만 덩그러니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방문자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젊은 여성분들끼리, 아니면 커플끼리 주로 오는 듯하다. 호스피탈리티도 중요하지만, 그보단 손님들이 이 공간을 잘 누리다 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것들만 남겨놓은 것 같기도 하다.


l 오른쪽에 보이는 도자기를 비롯해 그 옆으로 기왓장과 뿌리가 있다. 


칸토 카페의 이름 KANTO는 지상이 아닌 지하(땅속)의 '보이지 않는 대상'으로부터 존재하는 아름다움의 의미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한쪽 벽에 정갈하게 장식해둔 도자기와 '뿌리'를 형상화한 뒤집어놓은 나뭇가지, 그리고 기왓장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에게서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추구하는 문화와 디자인을 커피와 융합해 현실화 시키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l 필자는 애플의 제품을 하나도 쓰지 않지만 블랙 커버를 씌운 맥북은 좀 탐이 나는군.

l 역시 블랙은 완벽한 색이다.


무채색으로 미니멀함을 극대화한 공간에서 장비류 또한 전부 블랙이다. 아. 필자가 꿈꾸던 세상을 보는 것 같다. 바 위를 보면 이제는 거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것 같은 말코닉 EK43 모델과 미스터클래버, 아카이아 스케일, 발뮤다 드립 포트까지 전부 블랙으로 깔 맞춤을 했다. 심지어 포스에 올려둔 맥북조차 블랙 커버를 씌어뒀다. 필자의 심장을 저격한다. 


l 인포메이션 카드에 적힌대로 부드럽고 마시기 편안했다.


초여름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을 정도로 따뜻하고 화창했던 이 날 필자는 한겨울용 코트를 입고 방문했던 탓에 당장 아이스로 주문했다. 주문한 원두는 코스타리카 따라주 SHB. 필터 커피는 종류가 이것 뿐이기도 했고, 코스타리카를 가장 좋아하니 기분 좋게 주문했다. 나중에 다 마시고 물어보니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지는 않고 테라로사랑 어디 협업한 곳에서 로스팅했다고 하는데 사실 잘 못 들었다. 암튼 커피를 기다리며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니 그제야 음악이 들린다. 개인적으로도 시티팝을 좋아하지만 요즘 대부분의 카페에서 시티팝을 주구장창 틀어줘서 별로였는데 이곳은 재즈나 알앤비 같은 음악을 주로 틀었던 걸로 기억한다. 칸토의 SNS를 보니 귀를 심오하게 만드는 음악을 튼다고 하는데 무채색인 이곳의 느낌이랑 아주 조화가 잘 됐다. 


l 필자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으려 했으나 자세도 불편하고 분위기도 안 잡혀서 그저 커피만 쭉 들이켰다.  

l 벽이 화이트라 다리를 꼬거나 할때 조심하지 않으면 신발의 때가 잘 묻는다. 청소하기 힘드실듯.

l 테이블의 네 면에 턱이 있어 트레이가 고정 된다.


커피가 나온다. 무채색인 공간에서 검붉은색의 커피는 역시나 눈에 띈다. 사장님께서 트레이를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올려다 주시는 모습을 보고'되게 조심히 서브하시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트레이의 크기에 맞게 짜인 테이블에 양옆을 맞추는 거였다. 테이블의 네 개의 면에 뭔가 튀어나와 있어서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트레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턱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센스있는 아이디어에 잠시 감탄했다. 가만히 커피나 마시며 넋 놓고 있자니 이곳이 지하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해낸다. 지하라면 뭔가 일가견이 있는 필자는 이곳이 여름의 습함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잠시 걱정이 되었지만 요즘 워낙 기술들이 좋아서 큰 걱정은 안 하기로 한다. 남은 커피나 다 마셔야지.


 

l 쿠키와 파운드 케이크는 직접 굽는 듯하다.

l 저 소화기를 쏘면 검은 연기가 나올 것만 같다.


의도치 않게 자주 소개하게 되는 성수동은 필자가 참 좋아하는 동네다. 자주 가진 못하더라도 한 번 가면 적어도 카페 두세 군데는 들리는 동네일 만큼 좋은 공간들이 참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흑력을 충전할 수 있는 곳이라니. 앞으로도 흑력을 충전할 수 있는 곳들을 차근차근 소개하겠지만 저번 다스이스트프로밧이 멀어서 못 갔던 성동구의 흑돌이 흑순이들은 이곳 칸토카페에서 마음껏 흑력을 충전하길 바란다. 

 참, 여기 사장님 진짜 친절하다. 



※ 글, 사진 :  블랙워터이슈 이지훈 에디터

instagram : @ljhoon17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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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steryCafeIctus

2020-03-31 05:13  #1208613

완전 커피에만 집중해야 되는 그런 곳인가 보네요. 모든 사진들이 마치 흑백 사진을 보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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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W에디터지훈 작성자

2020-04-07 22:41  #1214879

@RoasteryCafeIctus님

커피도 커피지만 함께한 일행에게 집중하기도 좋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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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

2020-04-03 17:50  #1211876

한 번 방문하고 싶은 곳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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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W에디터지훈 작성자

2020-04-07 22:41  #1214882

@꼴통님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방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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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

2020-04-08 01:10  #1215059

미니멀한게 제 스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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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W에디터지훈 작성자

2020-04-09 18:22  #1216434

@roy님

저도 요즘 미니멀한 공간들을 찾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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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

2020-05-10 12:40  #1241921

지하에 있어서 어둑어둑한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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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W에디터지훈 작성자

2020-05-27 13:26  #1256312

@된장님

(댓글 확인이 늦었네요ㅠ) 약간 어둡게 보정됐지만 실내는 꽤 밝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