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인 라운지
직업으로서의 바리스타
안녕하세요. 저는 커피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깊게 커피업에 깊게 관여되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단지 과거부터 국내 커피시장, 그리고 커피업계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매우 관심있게 지켜보아왔던 사람이며 얼마전까진 국내, 지금은 해외에서 ‘바리스타’로서 커피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있는 보통의 사람입니다.
오늘 문득, 제가 오래전부터 가져왔던 문제의식을 꺼내서 여러분들과 함께 고민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민감한 부분이 아닐수 없기에 이 문제의식을 갖는것 조차 불순하게 비춰질까 조심스럽고 염려스럽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저와같이 생각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공론화 되어 직업으로서의 바리스타가 과연 우리사회에 뿌리 내릴 수 있는지 여부등을 업계 스스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블랙워터이슈에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
핸섬커피의 대표이자 2010 WBC 챔피언인 마이클필립스가 방한 했을 때 강연 중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통역 자막에서 직접 발췌해 보겠습니다. “바리스타는 우리가 우러러보는 그런 직업은 아닙니다. 바리스타인 자녀를 부모님이 자랑스럽게 반겨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녀를 키웠던 과정 에서의 문제에 대해 고민할 것입니다. 좋은 일자리는 아니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2011 현대카드 슈퍼토크 중-
강연 중 지엽적인 부분을 발췌 하였지만 이정도 수준의 인식이 우리사회에 퍼져있는 바리스타의 위치일 것이며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사정은 비슷할 것으로 사료 됩니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통상 임시직으로 여기고 전문적인 영역이라기 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저임금의 노동직이라고 생각하는것이 우리사회의 보편적인 시각일겁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아주 직접적인 예를 들어 보자면, 혼기가 찬 누군가가 곧 다가올 결혼 소식을 전하며 상대 배우자의 직업을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라고 소개 할 때의 주변 반응을 상상해 보시면 쉽게 체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곤 대부분은 반드시 이런질문을 하겠죠. ‘본인 소유의 매장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바리스타가 우리 사회의 수많은 직업 중 저임금을 대표하는 직업의 하나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임금
요즘에는 온라인에서 커피인들간의 커뮤니티가 매우 활성화 되어 사업주들께서 바리스타 구인을 SNS 통해서 하는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그래서 저 또한 자연스레 스페셜티 카페의 구인정보를 자주 접하곤 합니다. 안타깝게도 아주 오래전과 지금의 급여, 복지 수준은 큰 틀에서 변함이 없더군요. 세부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의미하는 바는 매우 유사합니다.
[최저임금에 근접한 임금수준으로 커피에대한 열정과 숭고한 직업의식을 보여주길 바라며 일정기간의 수습기간을 가져야 함]
정말 최저가로 최고의 열정을 가진 인재를 구인할 수 있다고 생각들을 하시는건지… 어떤업체는 급여기재를 연봉을 기재 해 놓으셨길래 세액을 제하고 실수령액을 근무시간으로 나눠보니 53XX원이 나와서 감탄했습니다. 최저임금에 기가막히게 딱 떨어지도록 맞춰 놓으신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수습기간의 의미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카페일을 배우는데 3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야하는지의 여부도 의문입니다. 물론 배움에 끝이 없듯 3개월안에 궁극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충분히 업무수행이 가능한 바리스타에게 수개월동안 수습이라는 딱지를 붙여 그 기간중 급여의 몇%라도 덜 지급하려는 고용주의 숨은 의도는 아닌지 씁쓸한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수습? 인턴? 경력직원을 선발하는경우 새로 선발되는 직원에게 요구되는 업무처리 수준이 있고 그 수준에 부합한다면 수습딱지를 붙일 이유가 없을것이고 신입을 뽑는다면 그만큼 낮은 급여를 제공하실텐데 대다수라고 말할 수 있을정도의 많은업체들이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시더라구요. 급여도 급여지만 바리스타에게 자존감을 부여하는것 조차 인색하시진 않나... 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맴도는것이 사실입니다.
무계획적인 양적강화
최저임금으로 좋은 바리스타를 구하겠다고? 그게 가능한가? 라는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슬프지만 그정도 급여에도 어쨌든 구인이 가능하기에 사업주들께서도 굳이 많은 임금을 제시할 필요를 못느끼시는 거겠죠.
최저임금으로 구인이 가능한 원인은 아주 단순해 보입니다. 공급이 많기 때문일텐데요. 이 공급의 주체는 어디일까... 커피, 바리스타과정을 가진 수많은 대학들과 무분별하게 자격증을 발급(저는 ‘판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하는 협회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더이상 보기 좋은 선망의 대상이었던 시기는 지났다고 판단 되고요) 산업이 발전하면서 그 분야를 다루는 학문이 떠오르고, 인재가 양성되는것은 당연한 수순이겠습니다마는 너무 많은 인력배출로 업계를 지향하는 젊은이들의 고용조건을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우수한 인력들의 유입을 업계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또한 커피관련학과를 통해 대학에서 배운 경험과 지식은 현장에서는 단지 하나의 부가요인이 될 뿐이지 채용과 연봉결정에 작용하는 핵심적 요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개선할 점도 많아 보입니다. 커피교육자분들께 개인적으로 이런점을 묻고싶기도 합니다. 마땅한 방안없이 본인의 직업적 역할수행을 위해서 학생들을 시장에 내몰기만 하는것은 아닌지, 직업으로서의 현실적인 부분을 정확하게 인지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일각에서는 커피자격증이 국가공인자격증으로 전환된다면 사회적 인식도 좋아질 것이고 바리스타라는 직업 자체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던데요. 전 그 말씀엔 전혀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자격증의 국가공인 전환이 불러올 인식변화는 미미할 것이고 결국 같은 아젠다로 다른 해결방안을 찾는 노력이 반복되겠지만 그 핵심으로의 접근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릴것으로 판단됩니다.
스페셜티 업계의 도제식 관행
대부분의 스페셜티 커피업체 대표자분들의 면면을 보면 화려한 이력을 가진 커피인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스레 유명 로스터, 바리스타, 큐그레이더가 운영하거나 속해있는 업체에는 좋은인재들이 앞다퉈 근무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의 근원이 발생한다고 봅니다. 바로 저임금으로 도제식 인사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쉽게말해 커피와 관련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것으로 근무에 대한 보상의 일부를 대신한다는 겁니다. 표면적으로 그렇게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최고 수준 스페셜티카페의 바리스타와 지역상권 내 개인카페 바리스타의 임금 수준이 대동소이 하다는것으로 충분히 추론이 가능 하실겁니다. 기술전수? 좋죠. 하지만 기술 이전 후 후배들의 장래에 대해서는 조금 무관심 하신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개인사업체를 갖지 않는 한 괜찮은 급여생활자가 되기 어려운 현실에서 스페셜티업계가 도제식 관행을 유지한다면 그의 장래에 대해 책임감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멘토만 바라보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직원들의 희생으로 얻은 부와 명예는 결국 그들에게도 돌아가야지요(그것의 크던 작던 말입니다).
최근 온라인상에 드러난 모 유명 스페셜티 업체의 내부갈등 사례를 통해서 도제식 인사의 역기능을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무리하다고 느껴질 만큼의 많은업무와 다소 매서운 조언은 멘티를 성장시키기 위한 과정이었을지 모르나 합당한 보상이 뒤따랐거나 혹은 멘토와 함께 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면 과연 이런상황까지 치닫게 됐을까 싶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바리스타의 자기계발
수년 전, 유명 바리스타인 지인이 새로 오픈한 매장에 인사를 간 적이 있습니다. 인테리어나 커피도 아주 좋았지만 훤칠하고 멋진 바리스타들이 눈에 들어와 ‘직원 선발도 아주 잘 하신 것 같다’ 고 말씀 드렸죠. 그런데 주인장께서 하시는 말씀이 ‘새로 뽑은 직원들이 너무 커피밖에 몰라 아쉽다’ 고 하시더군요. 당시엔 그보다 좋은 바리스타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분 말씀이 맞더군요. 바리스타의 주 임무는 커피를 제조하는 것이지만 사업체의 직원으로서 매장의 운영을 함께 고민하고 발전시킬 브레인으로서의 역할 수행도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제 나름의 결론이 나왔습니다.
바리스타로서 근무하시는 여러분, 본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고 계신지요? 좋은 추출, 라떼아트, 빠른 메뉴 제조, 친절한 서비스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계신 건 아닌지요? 물론 바리스타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자질 입니다만 좋은 보상을 기대하기에 효과적인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금 주제넘는 발언일지 모르나 저는 개인적으로 바리스타 여러분께 공부하시길 권장합니다. 커피 외에 디자인, 엔지니어링, 마케팅, 시사, 재무, 회계, 인사관리 등 사업체 대표와 머리를 맞대고 업체의 방향을 논의할 수 있는 그 어떤 분야의 지식이라도 좋으니 탐닉하고 연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바리스타라는 직업군의 평균 연령이 낮은탓도 있겠지만 젊은 바리스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커피외의 분야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아 안타까울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본인의 미래를 커피로 규정하고 일찍이 커피에만 집중하겠다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재 국내 커피업계에서 눈에띄는 분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 시작과 뿌리가 커피에 있었던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디자인, 마케팅, 엔지니어링 등 어찌보면 커피와 무관한 분야에 계셨던 분들이 커피업계로 넘어오시면서 과거에 몸담았던 업계의 경험과 지식을 커피업계에 반영하고 그것이 좋은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걸 아실겁니다. 커피라는 영역에 갇힌 그저그런 바리스타가 아닌 지식으로써 본인만의 색깔을 가진 바리스타가 된다면 자기발전의 속도는 본인이 생각 했던 것 그 이상이 될 것 입니다.
결론
냉정하게 말해 현재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저임금의 일자리입니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우리 사회에서 당당히 직업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들의 노동과 열정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치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깔끔한 매장환경에서 마냥 즐겁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을것이고 감당해야 할 과중한 육체노동과 정답이 없는 감각적인 부분과 끊임없이 대립해야하는 스트레스 또한 결코 만만치 않을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안타까운건 우리사회에서 직업군의 한축으로서 자리매김 하지 못하는 현실일거라 생각됩니다.
커피산업의 축을 대표하는 직업인 바리스타에 대한 직업적 인식의 변화는 곧 커피산업 전반에 대한 인식 변화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저는 이 움직임을 스페셜티 업계에서 시작하고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하고요. 각 분야에서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것이고 시간또한 적지 않게 걸리겠지만 이것은 궁극적으로 좋은 인재의 유입과 커피인의 사회적 지위 상승, 나아가 업계의 성장을 견인하는 촉매가 되어 국내 커피산업이 재도약하는데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ABOUT ME
PREVIOUS
'커피소녀'님의 취업고민에 대하여진심으로 쓰신 글 같아 많이 와닿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