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리뷰는 벙커컴퍼니의 BUNKER #8 BITTER SWEET(이하 #8)와 BUNKER #10 RIGHT ACIDITY(이하 #10). 어떤 로스터리인지 궁금해서 홈페이지에 방문해보았다. 홈페이지가 무척 잘 꾸며져 있다. 사진으로 보이는 인테리어와 기물이 범상치 않다. 벽에 걸린 낡은 태극기는 무슨 의미일까? BUNKER COMPANY는 또 무슨 의미일까? MAKE COFFEE WITH A BIT OF A SWAGGER? 이건 또 무슨 뜻일까?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았지만, 커피만 맛있으면 되지! 커피를 뽑아보자.
포장이 멋지다. 반짝이는 재질의 검정 바탕 위에 단정한 폰트. 자세한 설명도 없다. 대신 원두가 무슨 맛인지는 이름에 그대로 적혀있다. #8은 BITTER SWEET, #10은 RIGHT ACIDITY. 작명에서부터 자신감이 느껴진다. 실제로 저 맛이 안나면 어쩌시려고??? 그만큼 자신있다는 뜻.
먼저 #8 BITTER SWEET. 최소 5일이 지난 뒤에 추출할 것은 권장하고 있어, 충실히 그에 따랐다. 정확한 비율은 공개되어 있지 않지만 에티오피아 내추럴과 콜롬비아산 WASHED CATURRA가 섞여있다. 블렌딩만 봐도 달콤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분좋은 쓴맛을 어떻게 표현해줄까 궁금하다.
----------- 여기까지가 BUNKER COMPANY의 커피를 멋보기 전까지 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맛을 보고난 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쓴 맛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멋지게 다룬 블렌드가 있었던가? 보통 쓴맛을 줄이거나 감추려고 애쓰는데 #8은 쓴맛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쓴 맛이라기 보다는 혀끝에서 고소한 맛이 함께 어우러진 쌉쌀한 맛입니다. 거기에 단맛과 밸런스까지 더해져 아주 재밌는 맛이 표현됩니다. 전체를 100으로 놓고 보자면, 30%의 쌉쌀한 맛과 30%의 단맛이 서로 싸우고 있는데, 저 밑에서 40%의 침착한 친구가 "얘들이 진정해, CALM DOWN..."하고 잡아주고 있는 느낌. 아마 앞의 두 30%는 에티오피아 콩가 내추럴에 감춰진 지킬&하이드일테고, 침착한 40%는 콜롬비아의 워시드 카투라겠죠?
다음은 #10 RIGHT ACIDITY 입니다. LIGHT가 아닌 RIGHT입니다. 배전도가 낮지 않습니다. 케냐와 과테말라의 워시드 커피가 혼합되어있습니다.
사실 처음에 맛이 잘 나지 않았는데, 고재현님이 주신 힌트 덕분에 맛있게 추출이 되었습니다. 19g 담고, 25초 동안 딱 25g 뽑는 레서피였습니다.
역시...잘 뽑힌 에스프레소는 맛있습니다. 솔직히 제 미흡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가끔 얻어걸릴 때가 있는데, #8에서 그게 걸린 것 같습니다.
한 모금 마시고 이 상태로 잠시 멈춰있었습니다. 혀에 닿는 순간 먼저 농축되었던 에스프레소의 향미가 확 퍼지고 이이서 신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과일 느낌, 마지막으로 초콜릿 맛의 여운. 3박자가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얻어걸린 샷이라 다음에 또 이런 샷이 나올지는 모르겠네요...)
산미가 그렇게 도드리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약간의 쓴맛이 느껴지는데 입압을 쪼이는 그런 수준은 아니고, 맛을 끌어내다보면 충분히 허용될만한 수준입니다. 무엇보다 신맛과 단맛과 잘 어울려 과일 늬앙스가 잘 살아납니다. 과연 RIGHT ACIDITY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네요.
오랜만에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마셨더니 즐겁습니다.. 이제 에스프레소...하면 BUNKER COMPANY가 생각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