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워터이슈

  

59 19.09.13. 06:47
댓글 2 조회 수 287


 https://youtu.be/5GO16AfsgPk


 위 영상이 알바알토의 작품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진을 하나하나 다 넣으려다 그것보단 영상으로 보시면 더 좋을 것 같아 링크합니다.


모모스 퍼블릭 커핑을 다녀와서 부산시립미술관에 들렀습니다. 1년에 전시 몇 편 보지 않지만 부산시립미술관은 무척 좋아합니다. 싸고, 좋은 전시가 자주 있습니다. 지방인으로서 서울과 비교하면 문화 향유의 수준에 대한 아쉬움, 어쩌면 박탈감 마저 들 때가 있는데,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가끔 좋은 전시를 해줘서 고맙습니다. 대구는 많이 반성해야합니다.


저는 미술에 대해 지금도 무지하며, 미술 혹은 미술관과 전혀 관련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봐도 어렵고, 모르겠고, 돈과 시간만 아깝다고 생각하던 '갓반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극단 생활을 하며 한 작품의 행위자로 참여하게 되면서 미술관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매일 오가던 미술관에서 하나 둘 관심이 생겼고 지나가며 해설사(이하 도슨트)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재밌었습니다.


제가 미술관을 가끔 가게 된 계기는 여기서 출발하게 되었는데, 결정적으로 저는 미술관에서 '공간'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혹은 서서히, 미술관이란 공간이 제게 들어왔습니다. 그 공간 안에 있을 때 저는 외롭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미술관은 따뜻했고, 그 안엔 수많은 세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안에서 세상과 단절되었고, 내가 알던 사람들과 단절되고, 완전히 독립되고 새로운 공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엔 수많은 이야기와 질문들이 있었어요. 때론 내가 전혀 몰랐던 이야기들, 혹은 알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한 번도 내게 질문 던져보지 않았던 수많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매일 이 이야기를 듣는 공간을 지나왔고, 수많은 질문들을 받아들고 미술관을 나왔을 땐, 저는 그 전의 저와 달라져있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경험들을 하고서 저는 가끔 미술관을 찾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미술은 어렵고 뭔지 모르겠지만, 가끔 시립미술관 홈페이지를 스윽- 둘러보고 제 관심을 끄는 주제가 있을 땐 한 번 가보곤 합니다. 시립미술관에서 봤던 제일 재밌었던 전시는 지브리 스튜디오 전이었습니다. 저는 그 안에서 3살 혹은 5살 아이가 되었고, 토토로를 보며 웃던,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천공의 성 라퓨타를 봤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긴 여운이 남았던 붉은 돼지를 보며 저는 작은 아이가, 교복을 입던 학생이 되었습니다. 전시관을 나오며 미술관 의자에 앉아 오랫동안 여운에 젖어 한참을 앉아있었습니다.


미술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니, 어렵긴 합니다. 혹 어렵다면 저 저 저 저놈 당최...! 하며 욕하고 말면 그만입니다. 정말이에요. 이해하지도 못하는 어려운 현대미술을 보며 난 미술을 몰라, 미술은 어려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를 미술관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시립미술관을 찾았습니다. 핀란드, 그리고 북유럽에 들어가보기 위해서요.



Finnish aalto, 핀란드 웨이브라는 뜻입니다. 핀란드의 디자인과 현대미술의 물결을 맞아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전시는 11. 26까지 열립니다.


핀란드어로 소문자 aalto는 물결(wave)이라는 뜻이고, 대문자 Aalto는 핀란드, 아니 세계의 거장 디자이너 Alvar Aalto를 지칭합니다. 그 정도로 핀란드에서 알바 알토의 입지는 절대적이며, 그의 작품들을 보면 많은 분들이 '이 의자, 이 컵, 이것들이 전부 알바 알토라는 한 사람 작품이었단 말이야?'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알바 알토의 작품들은 전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핀란드는 근세엔 스웨덴의, 근대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온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가톨릭을 받아들인 스웨덴이 정복전쟁으로 핀란드를 정복했고, 핀란드는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 500년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스웨덴과 러시아는 오랫동안 북유럽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고, 그 사이에 낀 핀란드는 자연스레 전장이 되었습니다. 스웨덴과 러시아는 돌아가며 핀란드를 점령했고, 그러다 나폴레옹 전쟁(1803~1815) 때 핀란드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며 러시아 대공국이 되어 약 100년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며 핀란드는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고, 결정적으로 1917년 2월 러시아혁명이 일어나며 황제 니콜라이 2세가 폐위되었고, 1917년 6월,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핀란드 사회민주당이 핀란드 사회주의 노동자 공화국(핀란드 왕국)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핀란드, 핀란드 공화국은 1918년부터 시작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핀란드'라는 나라의 역사는 1917년 12월 16일 러시아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1919년 7월 17일에 헌법이 제정되고 공화국이 설립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핀란드라는 국가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거죠.


많은 나라들이 그렇듯 독립의 과정에서 핀란드도 내전을 겪게 됩니다. 적위군과 북위군으로 나뉘어 적백내전(핀란드 내전)을 거쳤고, 러시아와 독일이 서로 이들을 지원하며 전쟁이 확대되었습니다. 군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적위군에 레닌이 병력 지원을 많이 해주지 않았고, 독일을 등에 업은 백위군이 어렵지 않게 승리하게 됩니다. 이때 백위군에 의한 학살로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전체 인구의 1~2%에 달하는 5만명 이상의 적위군과 혁명을 지지하던 노동자들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며 핀란드는 소련으로부터 침공을 받게 되어 나치 독일과 동맹을 맺고 러시아로부터 점령당한 영토를 수복하기도 했지만, 독일군의 패배가 예상되자 연합군으로 돌아서 전 국토를 전장으로 만들며 독일군을 몰아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독일군을 모두 몰아내는 데에 성공하긴 했지만 전투 과정 중 로바니에미(핀란드 영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이때 전쟁으로 완전히 황폐화 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산타클로스를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에 주력하게 되었는데, 현재는 대표적인 산타 관광마을이 되었습니다.


전쟁의 상처란 가슴아프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역사일 겁니다. 교육과 복지의 천국, 산타와 루돌프, 울창한 산림의 아름다움만 떠오르는 핀란드는 그 내면에 이런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10살 소녀 앞에서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심장마비였다. 너무 무서워 식탁 밑에 숨은 나를 똑바로 바라본 채 아버지는 숨을 멈췄다. 그것이 평생의 죄의식으로 남아 있다. 이후 몇 년간 아버지 옷을 줄여 입었다. 아버지의 온기가 필요했고 그로 인해 내가 안전하다는 느낌을 원했다. 그리고 옷에서 진실로 그것을 느꼈다."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작품, 카리나 카이코넨의 '우리는 당신의 날개'라는 작품입니다. 그녀는 어릴 때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눈 앞에서 봐야했고, 그 기억이 평생의 죄의식으로 남아 아버지를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유품을 정리하며 아버지의 옷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옷은 인간의 형태와 기억을 담고 있고, 옷은 '내가 여기 있었다'는 신호라고 말합니다. 벗어 두더라도 거기 닿아 있던 몸의 뜨거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녀는 부산 시민들로부터 800여벌의 옷을 기증받았고, 부산의 시민들로부터 이어져온 부산의 역사와 정신을 이었다고 말합니다. 부산 시민들의 흔적과 역사가 담겨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북유럽 스타일', '북유럽 디자인' 등의 말로 총칭되듯 핀란드의 문화와 예술은 세계인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1960년 이전, 패션 산업은 디자인 분야에서 창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이때 핀란드의 패션을 세계적으로 부각시킨 마리메꼬와 부오코라는 두 회사가 출발했습니다. 위 의복과 패브릭은 부오코의 설립자인 부오코 누르메스니에미(패드립 아님ㅎ)의 대표적인 디자인 작품입니다.


부인 부오코 누르메스니에미와 남편 안티 누르메스니에미는 둘 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인데, 부오코의 의복 작품들은 북유럽의 패션을 이끌어온 것으로 유명하고, 사실 차붕이들에겐 안티 누르메스니에미의 작품이 더 익숙할 텐데 뭐냐면, 여러분이 익히 봐오시던 빨간색 커피포트가 이 안티 아저씨의 작품입니다.



Antti Nurmesniemi. Coffeepot. 1957



보셨던 문양 아닌가요? 부오노 누르메스니에미 이후의 디자이너들은 부오노의 영향력이 너무나도 컸고,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부오노에서 없는 패턴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꽃 모양이 없다는 것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위 패턴은 양귀비 꽃에서 따온 패턴이라고 하네요. 디자인 된 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백화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마티 쿠야살로 MAtti Kujasalo, 무제


Tape를 이용한 오브제

따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테이프를 이용한 패턴 형상 그 자체를 만든 작품이라고.


"나의 작업은 내 의식 속에 있는 시각적 이미지에 지배당하며, 이것은 내가 구조적으로 재현하려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결과는 미리 상상할 수 없다."



오이바 토이카 Oiva Toikka, Glass bird series


핀란드 유리공예 대가인 오이바 토이카는 민속예술과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색상들과 형태를 반영하는 작업들을 보여줍니다. 위는 그의 대표작입니다. 수준 높은 차붕이들은 Iittala 디자인으로 유명한 kastehelmi 커피 컵을 보면 더 잘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littala kastehelmi coffee cup



조금 더 들어오니 알바 알토의 작품을 비롯한 Artek(아르텍은 1935년 알토 부부가 설립한 디자인 회사입니다. 알토 부부 Alvar and Aino Aalto, 마리 글릭센 Maire Gullichsen, 닐스 구스타브 할 Nils Gustav Hahl 4인 공동 창업) 가구들을 볼 수 있습니다. 북유럽! 목재! 감성! 하고 외치며 너무나도 예쁜 의자들이 늘어서있었습니다.


액자에 걸린 여자 사진은 엘리나 브로테러스 Elina Brotherus라는 작가의 작품이며, 사진의 여성이 작가 본인입니다. 작가는 사진 작업으로 주로 자화상을 많이 찍으며, 알바 알토의 하우스에 대해 흥미를 가져 건축물을 배경으로 작업한 이미지를 선보였습니다. 알토의 가구들 뒤로, 알토의 가구와 함께 찍은 그녀의 사진이 걸려 있는 모습이 재밌었습니다.



Antti Nurmesniemi. Coffeepot. 1957

이게 차붕이들이 흔히들 써오고 봐온 안티 누르메스니에미의 커피포트입니다. 이렇게 보니까 괜히 신기하고 재밌더라고요.



도무스 체어 Domus chair로 유명한 일마리 타피오바라 Ilmari Tapiovaara의 Easy Domus Chair입니다.


일마리 타피오바라는 원목이라는 재료가 만들어내는 무한한 세계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많은 원목 제품들을 디자인 하였으며 그가 디자인한 가구들은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5번이나 금상을 받게 됩니다. 일마리 타피오바라는 알바 알토의 뒤를 잇는 핀란드의 대표 디자이너로 항상 손꼽힙니다. 위 가구 역시 Artek의 Domus Chair입니다. Artek Domus로 이미지 검색해보면 와 이거야? 하실 걸요? ㅋㅋ



편하고 심플하면서도 멋드러지게 구부러진 Artek 가구, 그 중에서도 Alvar와 Aino Aalto의 대표작들입니다. 우측 스툴과 유리컵, 찬장이 아이노 알토의 작품입니다.


알바와 아이노는 건축물, 가구 뿐만 아니라 유리컵 등 생활용품도 디자인 했는데요, 저기 작게 보이는 파란 유리컵이 이딸라 iittala의 아이노 알토 컵입니다.

원형의 물결파문을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진 이 컵의 디자인은 사보이 꽃병, Kartio컵과 함게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을 받고 있는 이딸라의 간판 디자인 중 하나일 뿐더러 북유럽 모던 디자인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자리 매김 되어 있다고 합니다.


Aino Aalto Cup



여러 설치작품들이 있습니다. 글이야 쓸 수 있겠지만 너무 길어져서 가볍게 넘깁니다.

마지막 작품 제목이 재밌습니다. 타르야 피카넨-왈터 Tarja Pitkanen-Walter의 '불가능한 혼합/두 교수'라는 작품입니다.


Unsolvable Cross/Two Professors, 80x270x30cm, Plastic paint, 2010



사진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마지막의 유머러스한 사진은 펜티 사말라티 Pentti Sammallahti의 작품입니다. 흑백사진과 은염인화의 일인자로 21세기 사진계에 큰 영향을 끼친 장인이자 북유럽 사진가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스스로를 여행가, 방랑가로 칭하며 전세계를 다니며 풍경과 동물, 자연을 흑백사진으로 기록합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그의 사진 작품은 무척 작았습니다.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는.


"어느 날 바위섬에서 내 자신을 찾으며 깨달은 게 있다. 내 곁에 있는 돌이, 해변가에 있는 배가,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이, 그림을 그리듯 날아가는 새들이 내게 말한다.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받아들이는 것임을."



Alvar Aalto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의자42라는 단순한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은 건축가이자 디저이너인 알바 알토가 파이미오 요양원의 건축 설계를 맡게되면서 요양원에 사용할 의자로 디자인 한 작품입니다. 지금이야 우드몰딩 기술이 너무 보편화되어 대단한 줄을 모르지만, 당시 우드몰딩은 획기적인 기술이었습니다. 알바 알토는 나무를 구부려서 작업하는 우드몰딩 기술의 창시자라고 합니다(도슨트에게 들은 내용입니다).


당시 신기술이었던 벤트 플라이우드 Bent Plywood 기술을 통해 자유롭고 강도 높은 목재 제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의자42는 요양원 환자들이 편안하게 오랫동안 앉을 수 있도록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의자라고 합니다. 책을 읽기 딱 좋게 만들어졌다고.



핀란드 호수에서 영감을 받은 알토 부부의 알토 베이스 Aalto vase는 이딸라 Iittala를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보이 레스토랑을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1936 이딸라가 주최한 유리제품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했으며 1937년 파리 세계 박람회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뒤의 드로잉은 알토 베이스의 설계 스케이고, 호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이 은유적 오브제는 알토의 자연주의 디자인 철학을 잘 말해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Artek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죠. 스툴.



이 작은 사우나 스툴이 정말 너무너무 재밌었습니다. 이렇게 작고, 귀엽고, 엉덩이가 부끄러워 할 것 같은 사우나 스툴이라니요! ㅎㅎㅎ



위르여 쿡카푸로 Yrjo Kukkapuro의 작품입니다. 그는 인체공학적 가구 디자인을 추구하였으며, 그의 디자인은 기능성과 미학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목표로 하여 실용성이 강조될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다. 그의 가구는 인간의 형태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선이 인상적인 디제인 제품으로, 위 의자는 1974년 뉴욕타임즈에서 뽑은 <세계에서 가장 편안한 의자>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의자는 인체의 형태럼 부드러운운 모양을 가지고, 인간의 모습을 반영시킬 수 있다. 가능하면 아름답게 만들어라."



유리잔과 조명의 모습이 보입니다.


북유럽은 일조량이 많지 않고 해가 빨리 집니다. 자연히 실내활동이 많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생활 양식에서 북유럽인들은 자연스레 독서량이 많았습니다(생각해보세요 TV도, 인터넷도 없는). 그러다니 자연스레 편한 의자를 추구하게 되었고, 조명이 좋아야하며, 디자인의 기능성이 강조되게 됩니다. 차분한 성격의 북유럽인들이 자연스레 집을 꾸미고 실내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면서 과하게 튀진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투박하지도 않은 이런 북유럽 특유의 감성을 만들어내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르텍 라운지가 있어 앉아 쉬어갈 수 있었습니다. 잠시 앉아보았습니다.



모든 전시가 끝났습니다. 영상작업이 따로 하나 있었는데 가볍게 보고 갔습니다. 아래부턴 3층입니다.


3층엔 다른 전시(이건용-이어진 삶)가 진행되고 있었고, 온 김에 둘러보자 해서 가볍게 둘러봤습니다. 텍스트 작업이 무척 재밌었습니다. 별도의 이야기 없이 가볍게 사진 한 번 보고 가세요. 그리고 시립미술관을 갈 일이 있으시다면 전체를 한 번 둘러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Finnish aalto 핀란드 웨이브전은 11월 26일까지 진행됩니다. 성인 일반 관람료는 5천원이고, 예술인 패스 카드가 있으면 3천원에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술인 패스가 있어 3천원에 봤는데, 3천원으로 이만한 전시를 볼 수 있다고 하면 넘치는 가치가 있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여기다 이렇게 긴 글을 쓰는 거 무슨 의미가 있냐 뻘글 아니냐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이 글을 쓰며 핀란드의 역사와, 디자인과, 현대미술에 대해 오늘 하루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게 됐습니다. 도슨트 하래도 하겠어요. 이는 다른 누구에게 남는 것이 아닌 저에게 가장 많이 남는 일입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글을 쓰는 것은, 그 글을 쓰기 위해 엄청난 자료 수집이 필요하고, 이를 정리하며 온전히 내 공부가 됩니다. 저는 앞으로 핀란드를 보게 되면 이 전과는 다르게 보일 것 같아요. 제게 정말 가치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차붕이들... 그럼... 오늘도... 노르딕... 로스팅... 알지...? 즐커하자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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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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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MOSOL

2019-09-13 10:03  #977890

청년,,,^^,,,노르딕은,,,너무,,,심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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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메리

2019-09-13 19:16  #978175

잘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