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뉴스

그럼에도 우리는 커피를 블렌딩하지 않습니다. by 노띵커피

2023-12-30  


그럼에도 우리는 커피를 블렌딩하지 않습니다.

작성자 : 노띵커피


이 컨텐츠는 블렌드 커피의 좋고 나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커피를 블렌딩하는 목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블렌드 커피가 맛있는 커피를 위한 선택 혹은 커피로 행하는 예술의 극치나 텍스트로는 담아낼 수 없는 비법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은 것입니다.


"좋은 커피에 담아낸 바리스타와 로스터의 수고로운 결과물"

"커피에 특별함을 더하기 위해"

"쉽게 공감할 맛을 설계하기 위해"

"스페셜티 커피의 매력을 더 잘 담아내기 위한" 

블렌드 커피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좀 더 솔직하게

"로스터리 혹은 카페의 마케팅적 요소를 담아내고"

"맛의 하향치 평준화를 통한 일관성을 확보하고"

"상품에 안정적인 지속가능성을 부여하기 위한" 

블렌드 커피가 훨씬 적합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2004년 월드바리스타 챔피언인 팀 윈들보는 자신의 카페에서 블렌드 커피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는 블렌드 커피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If you have a great quality coffee it is complex, sweet, balanced, if you brew it well and roast it well, so there is no need for blending it. If I would buy really great bottle of wine from France or from a specific vineyard and I wanted to make this more complex, so I would take some Australian wine or Italian wine and mix it in there. It doesn't make sense to me. - Tim Wendelboe(World Barista Champion 2004 & World Cup Tasting Champion 2005)


훌륭한 품질의 커피를 적절하게 로스팅하고 추출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복합적이고 달콤하고 균형 잡혔기 때문에 블렌딩할 필요가 없다. 프랑스 혹은 특별한 농장의 훌륭한 와인을 샀을 때, 이 와인을 더욱 복합적으로 만들기 위해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의 와인을 추가로 섞는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럼에도 맛과 품질 향상, 로스터리만의 개성이나 철학을 담아내기 위해 블렌드 커피를 해야겠다면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아래의 예시를 통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예시)

"XXX 블렌드 커피" 

딸기와 오렌지의 상큼달콤함에 재스민의 플로럴한 향을 담은 커피! 

콜롬비아 50%, 케냐 30%, 에티오피아 20%의 비율로 블렌딩되었습니다.



〔XXX 블렌드 커피의 난제 1〕

콜롬비아 : 케냐 : 에티오피아 = 5 : 3 : 2의 비율로 블렌딩된 1kg의 XXX 블렌드 커피가 있습니다. 한 잔의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 1Kg(1000g)의 원두 중 고작 20g의 원두를 사용할 때에도 매번 이 비율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요?


(극단적으로 원두 1개가 1g이라고 했을 때 커피 한 잔 추출에 원두 20개(20g)가 필요하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여기에 콜롬비아 : 케냐 : 에티오피아의 5 : 3 : 2 구성 비율이 그대로 적용될 확률은 고작 4.5%입니다)

003_105141.jpg


〔XXX 블렌드 커피의 난제 2〕

XXX 블렌드 커피를 구성하는 원두 중 콜롬비아와 에티오피아는 2분 30초 추출시 이상적인 용해도를, 케냐는 3분 추출시 이상적인 용해도를 갖고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블렌드 커피에 같은 조건, 같은 추출시간을 적용한다면 과연 의도했던 향미를 발현시킬 수가 있을까요?


(각 커피의 용해도를 고려해 비율을 정하고 전체 용해도를 동일하게 맞추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용해도를 맞춘다는 건 단순히 수치를 맞춘다는 건 물론이고 수없는 관능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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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이전 글을 참고(바로가기 → '블렌딩 커피의 맹점')

이런 한계를 갖고 있음에도 블렌드 커피를 제공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 마케팅적 요소

다수의 소비자에게 이미 각인돼 있는 블렌드 커피의 이미지는 마케팅에서 매우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굳이 낯선 싱글 오리진의 개념을 소비자에게 설명하며 설득해야 할 기회 비용을 감수할 필요가 없으며 카페나 로스터리의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가기에도 매우 용이합니다.


2. 지속 판매 가능한 상품성


⑴ 대규모 로스터리(국내외 프랜차이즈 포함)

월, 톤단위의 커피를 소모하는 사업군에서는 뉴크롭에 *패스트크롭까지 사용해도 싱글 오리진 커피로는 그 수요를 소화해낼 수가 없습니다. 

(* 패스트크롭 : 그 해 생산된 생두인 뉴크롭과는 구분되는, 생산된 해를 넘겨 향미의 손실이 진행되는 생두) 


다양한 커피를 섞어 제공하는 블렌드 커피는 작황이나 수확시기 따라 들쑥날쑥한 커피 공급에 대한 위험성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여기에 소비자가 어느 지점에서 커피를 마시더라도 그 일관된 맛을 유지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것은 맛의 하향치 평균화를 통한 일관성을 선택하게도 됩니다. 즉, 커피 향미의 발현을 위한 가치보다는 일관된 상품성을 갖기 위한 최선책으로 블렌딩을 선택합니다. 


⑵ 중소규모 로스터리(스페셜티 업체 포함)

커피는 특정 수확시기가 있는 계절성을 가진 작물입니다. 스페셜티 산업군에서는 (그 해 생산된 뉴크롭을 사용한다는 가정하에) 이 계절성을 완화하기 위해 블렌딩을 합니다. 신선한 커피를 일관되게 공급하려는 스페셜티 사업군에서 시즈널 블렌딩(Seasonal Blend)이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특히 콜롬비아는 2번의 수확시기를 가지는데 이것은 다른 산지 커피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신선한 생두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많은 블렌드 커피에서 콜롬비아 생두가 선호되고 있습니다.



〔덧붙임〕

그렇다면 왜 우리는 싱글 오리진 커피를 제공하는가

알고 보면 진정한 싱글 오리진 커피는 없다고, 농장에서부터 이미 블렌딩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잘 관리된 싱글 에스테이트(Single Estate) 커피여도 이미 다양한 품종이 섞였고, 재배고도의 분포 폭이 꽤 크며, 수확 과정에서 체리의 성숙 정도가 다르며, 이 다양성은 발효 및 건조 과정에서도 계속됩니다.


하지만 농장 단위에서의 블렌딩과 최종 제공자 단위에서의 블렌딩은 구분 되어야하며, 이 콘텐츠에서는 최종 제공자 입장에서의 블렌딩을 이야기합니다


006_105448.jpg



비즈니스에서 재고 관리 및 캐쉬 카우(Cash Cow)가 될 일관된 상품의 존재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블렌딩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최선의 블렌드 커피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블렌드 커피가 가진 맹점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며, 이것을 소비자에게 전달해야 할 책임을 갖습니다.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하는 카페라면 그 책임감이 더욱 커집니다.


스페셜티 커피의 본질은 품질 좋은 커피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이것은 투명성을 바탕으로 하며, 그래서 커피가 가진 이야기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데 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를 이야기하는 바리스타와 로스터라면 지금 당신이 마시는 커피가 어떤 커피인가를 알려야 할 의무가 있고, 그 해 생산된 커피가 소진되면 언제든 다른 커피로 바뀌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들쑥날쑥한 작황 앞에서도 커피맛에 집중할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싱글 오리진 커피만을 제공합니다. 같은 경기도 쌀이라도 여주 쌀과 이천 쌀이 다르듯 그 맛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싶고, 모두가 좋아하는 커피보다는 다양한 커피를 소개하고 싶고, 그래서 더 재미있게 연구하고 싶고, 투명성을 바탕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하는 유기적인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어 우리는 싱글 오리진 커피만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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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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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BEST

2024-01-01 14:24  #2270900

블렌드 커피에 대한 맹점을 정확히 분석해주셨네요~


저도 2015년부터 블렌드 커피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위에 내용 대부분을 고려하고 고민하였고,

2015년도에 실제 실험을 통해... 

내가 원하는 향미를 위해 만든 블렌드 커피의

블렌드 비율이 절대로 한 잔에 담길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이후에는 블렌드 커피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2010년대 이후에는 선택 가능한 훌륭한 품질의 커피가

매우 많아져서, 제대로 로스팅하고 추출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풍성하고 균형 잡힌, 그리고 고유의 특성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블렌딩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부분은 선택 사항이기 하지만,,,


[ 2015년도 실험 ]

1. 사전에 4종류의 원두를 각 각 다른 색상의 스프레이를 뿌려 구분할 수

있게 만들고, 4종류를 각 25%씩 로스팅 후 블렌드 513.2g 1pack 준비.

2. Esso 2shot 기준 사용 원두량 20g 기준 * 25개 소분.

3. 개당 분포되어 있는 원두를 모두 분류하고 무게를 계량하여 분석.

4. 25개 모두 원래 목표를 했던 비율에 한 번도 맞지 않았으며,

실제로 매우 큰 편차가 발생. 특히, 심한 경우, 2종류는 각 10%대,

다른 2종류는 30%대 ~ 40%대가 나타남.


팀 윈들보가 이야기한

훌륭한 품질의 커피를 적절하게 로스팅하고 추출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복합적이고 달콤하고 균형 잡혔기 때문에 블렌딩할 필요가 없다.

는 말이 와 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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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

2024-01-01 14:24  #2270900

블렌드 커피에 대한 맹점을 정확히 분석해주셨네요~


저도 2015년부터 블렌드 커피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위에 내용 대부분을 고려하고 고민하였고,

2015년도에 실제 실험을 통해... 

내가 원하는 향미를 위해 만든 블렌드 커피의

블렌드 비율이 절대로 한 잔에 담길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이후에는 블렌드 커피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2010년대 이후에는 선택 가능한 훌륭한 품질의 커피가

매우 많아져서, 제대로 로스팅하고 추출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풍성하고 균형 잡힌, 그리고 고유의 특성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블렌딩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부분은 선택 사항이기 하지만,,,


[ 2015년도 실험 ]

1. 사전에 4종류의 원두를 각 각 다른 색상의 스프레이를 뿌려 구분할 수

있게 만들고, 4종류를 각 25%씩 로스팅 후 블렌드 513.2g 1pack 준비.

2. Esso 2shot 기준 사용 원두량 20g 기준 * 25개 소분.

3. 개당 분포되어 있는 원두를 모두 분류하고 무게를 계량하여 분석.

4. 25개 모두 원래 목표를 했던 비율에 한 번도 맞지 않았으며,

실제로 매우 큰 편차가 발생. 특히, 심한 경우, 2종류는 각 10%대,

다른 2종류는 30%대 ~ 40%대가 나타남.


팀 윈들보가 이야기한

훌륭한 품질의 커피를 적절하게 로스팅하고 추출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복합적이고 달콤하고 균형 잡혔기 때문에 블렌딩할 필요가 없다.

는 말이 와 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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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OGEEKS

2024-01-01 15:17  #2270925

@꼴통님

대단한 접근을 해보셨군요! 블렌딩의 본질에 대한 부분 그리고 블렌딩을 위해 고려해야할 인사이트 등이 잘 나타난 소중한 댓글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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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

2024-01-01 15:25  #2270932

@SPROGEEKS님

이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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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카페

2024-01-02 21:11  #2271513

잘 봤습니다. 저한테 있어 블랜딩 커피의 목적은 타겟 향미의 설정과 제품 안정성 입니다.  그럼 여기서 말씀해주신 난제1이 걸리겠죠. 커피의 향미는 다채롭지만 사실 사람의 코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리고 로스팅 포인트를 미듐 다크 이상으로 하면 커피의 맛이 대게 비슷해지기 때문에 비율 편차가 좀 커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어느정도의 편차는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이죠. 근데 로스팅 포인트가 낮을수록 블랜딩커피의 향미편차가 조금 큰 것 같긴 한데, 그래서 비율을 비슷하게 하거나 두가지 정도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블랜딩을 한 이상 블랜딩 전의 각 싱글은 생각할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선블랜딩이든 후블랜딩이든요.

선블랜딩을 하면 아예 새로운 생두제품 1이 됬으니, 이 제품에 맞는 로스팅 프로파일을 구축하면 되고 후블랜딩을 해도 이 역시 새로운 제품이 됬으니 블랜딩 전 각 싱글의 최적 상태를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블랜딩 후만 고려하면 되죠. 

블랜딩의 또 하나의 매력은 사과향을 갖는a 커피와 포도향을 갖는b 커피를 섞었을 때 사과향과 포도향을 갖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실제론 전혀 다른 향이 나올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과향과 포도향이 잘 어우러져 질수도 있음)

아무튼 블랜딩을 한다는 것은 커피의 편차를 받아들인다는 전제 조건에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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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용

2024-01-03 09:38  #2271767

유니크한 스페셜티 커피를 사용한다면 당연히 싱글오리진을 사용해야겠지만, 그 외 95%의 로스터와 보통 카페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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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3 10:08  #2271782

싱글몰트 위스키와 블렌디드 위스키의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듯이,

커피도 블렌드와 싱글오리진의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싱글오리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동반되지 않은 블렌딩은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먼저 알고 시장에서 도태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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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AndThen

2024-02-05 15:09  #2295418

좋은 고견 감사드립니다!

공부에 도움이 되었습니다!